AI가 만든 그림자 시장…중국 게임 핵 시장 규모 2조 원 육박, 이제는 ‘치팅 서비스’ 시대
AI가 게임 산업을 바꾸고 있다.
개발 속도를 높이고, NPC를 더욱 똑똑하게 만들고, 운영 효율을 개선하는 등 긍정적인 변화가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기술 혁신에는 늘 그림자가 존재한다. 최근 중국에서 공개된 자료는 AI가 게임 산업에 가져온 또 다른 문제를 보여준다.
바로 게임 핵(치트)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이다.
최근 텐센트 산하 게임 보안 조직인 **Tencent ACE**가 공개한 ‘2025 게임 보안 백서’에 따르면 중국 내 게임 불법 프로그램 시장 규모는 약 2조 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더 충격적인 것은 단순히 시장 규모만이 아니다.
과거에는 핵 프로그램을 판매하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AI를 활용해 직접 플레이를 대신해주는 서비스까지 등장하면서 치팅 산업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비즈니스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 게임 시장은 사상 최대 규모
이번 보고서가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중국 게임 시장 자체가 엄청난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료에 따르면 중국 게임 시장 규모는 3,507억 위안을 넘어섰다.
한화로 약 80조 원에 달하는 수치다.
게임 이용자는 6억 8천만 명을 돌파했고, 중국 게임의 해외 매출도 약 31조 원 규모를 기록했다.
쉽게 말하면 세계 최대 게임 시장 중 하나가 더욱 커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시장이 커질수록 따라오는 것이 있다.
바로 범죄와 부정행위다.
실제 온라인 게임 역사에서도 이용자 수가 늘어날수록 계정 거래, 봇, 핵 프로그램 시장이 함께 성장해 왔다.
이번 보고서는 그 규모가 이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했음을 보여준다.
2조 원 규모의 ‘그림자 산업’
게임 이용자들이 흔히 생각하는 핵 시장은 단순하다.
에임핵, 월핵, 자동사냥 프로그램 같은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정도다.
하지만 현재 중국 시장은 이미 그 수준을 넘어섰다.
백서가 추산한 2조 원 규모 시장에는 단순 핵 판매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불법 서비스가 포함된다.
대표적으로는 계정 육성 대행, 랭크 대리 플레이, 봇 운영, 자동 재화 수급 서비스 등이 있다.
즉, 단순한 프로그램 판매가 아니라 게임 내 경쟁 자체를 돈으로 거래하는 산업이 형성된 셈이다.
과거에는 이용자가 직접 핵을 설치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과정조차 필요 없어지고 있다.
핵도 구독 시대? ‘치팅 서비스’의 등장
이번 보고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CaaS(Cheating as a Service)라는 개념이다.
이른바 ‘치팅 서비스’다.
클라우드 서비스처럼 핵도 서비스화됐다는 의미다.
예전에는 핵 프로그램을 구매한 뒤 직접 실행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전문 업체가 대신 계정에 접속해 원하는 랭크까지 올려주거나, 자동으로 재화를 수집해주는 형태가 늘고 있다.
이용자는 아이디와 비밀번호만 넘겨주면 된다.
나머지는 서비스 제공 업체가 알아서 처리한다.
게임 업계에서는 이를 매우 위험한 변화로 보고 있다.
프로그램 자체를 탐지하는 것보다 사람처럼 행동하는 서비스를 적발하는 것이 훨씬 어렵기 때문이다.
AI가 핵 개발 장벽을 무너뜨렸다
이번 보고서가 특히 AI를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생성형 AI와 대규모 언어 모델(LLM)이 보편화되면서 핵 개발 진입장벽이 크게 낮아졌다.
과거에는 숙련된 프로그래머가 아니면 만들기 어려웠던 프로그램도 이제는 AI 도움을 받아 비교적 쉽게 제작할 수 있게 됐다.
결과는 숫자로 나타난다.
2025년 확인된 PC용 불법 프로그램 수는 전년 대비 124% 증가한 13만 8천여 개에 달했다.
기능 수는 더욱 가파르게 늘었다.
무려 277% 증가해 59만 개를 넘어섰다.
이는 단순히 핵 프로그램이 늘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의 핵이 제공하는 기능 자체가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가장 큰 피해자는 FPS 장르
장르별 통계도 흥미롭다.
불법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 것은 슈팅 게임이었다.
전체의 81.9%에 달한다.
이는 사실 예상 가능한 결과다.
FPS 장르는 실력 차이가 승패에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그래서 에임 보정, 자동 조준, 벽 투시 같은 기능이 큰 효과를 발휘한다.
반면 액션 게임은 11.8% 수준이었다.
커뮤니티에서는 오래전부터 “FPS 게임의 진짜 적은 상대 팀이 아니라 핵 사용자”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다.
이번 통계는 그 농담이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모바일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흥미로운 점은 모바일 게임 역시 빠르게 오염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모바일용 불법 프로그램 수는 전년 대비 117% 증가한 23만 건 이상으로 집계됐다.
예전에는 모바일 환경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평가받았다.
폐쇄적인 플랫폼 구조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근 모바일 게임의 규모가 커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특히 자동 사냥, 자동 파밍, 계정 육성 관련 프로그램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게임사가 탐지하면 새로운 방식이 등장하는 악순환도 반복되고 있다.
이제는 사람처럼 말하는 AI 봇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AI 봇이다.
기존 봇은 단순 반복 행동을 수행했다.
그래서 움직임 패턴만 분석해도 어느 정도 탐지가 가능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상황이 다르다.
AI를 활용해 실제 이용자의 조작 패턴을 모방하고, 채팅까지 자연스럽게 수행하는 봇이 등장하고 있다.
일부는 사람처럼 대화를 이어가고 상황에 맞는 반응을 보인다.
게임 내에서 만났을 때 사람이 아닌지 구분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발전한 것이다.
결국 AI가 안티치트 기술뿐 아니라 치트 기술 자체도 진화시키고 있는 셈이다.
AI와 AI의 전쟁
흥미롭게도 해결책 역시 AI다.
텐센트는 리플레이 데이터를 AI가 분석하는 방식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인 이용자가 보이기 어려운 반응 속도나 판단 패턴을 AI가 찾아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이 절대 할 수 없는 수준의 조준 정확도나 비정상적인 정보 인식 능력을 학습을 통해 탐지하는 방식이다.
또한 거래 패턴과 계정 행동 양식을 분석해 불법 서비스 조직 전체를 추적하는 기술도 개발 중이다.
결국 앞으로의 게임 보안은 사람과 핵 사용자의 싸움이 아니라 AI와 AI의 싸움이 될 가능성이 높다.
게임 산업의 새로운 전쟁터
게임 업계는 오래전부터 핵과 싸워왔다.
하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과거와 성격이 다르다.
핵 프로그램 몇 개를 막는 수준이 아니라 거대한 산업화된 생태계와 경쟁해야 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특히 AI의 발전으로 인해 공격 측과 방어 측 모두 강력한 무기를 손에 넣게 됐다.
개인적으로 이번 보고서에서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2조 원 규모 자체보다 ‘치팅 서비스’의 등장이다. 과거 핵은 규칙을 어기는 일부 이용자의 문제였다면, 이제는 전문 업체가 수익을 창출하는 산업이 됐기 때문이다.
결국 게임 시장이 성장할수록 핵 시장도 함께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앞으로의 승부는 누가 더 강력한 AI를 가졌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빠르게 진화하는 AI를 통제하고 활용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게임업계의 다음 전쟁터는 콘텐츠가 아니라 보안과 AI가 될지도 모른다.
